코로나 창궐 초창기였던 2020년의 3월.
다들 아시다시피 당시 외출이 자제 되던 분위기 속에서 출시된 모두 모여요 동물의 숲과 닌텐도 스위치의 인기는 가히 신드롬급이었다.
난 이 게임을 애들, 여자들이나 하는 게임이라는 건방진 생각을 가지고 관심도 두지 않았으나 여론의 폭발적인 긍정적 반응과 각종 밈들, 주변 스위치 유저들은 전부 한다는 점 등등으로 인해 호기심이 생기던 터, 하남 스타필드 일레트로마트에 놀러갔다가 견물생심.그 구하기 힘들다던 동물의 숲 패키지가 막상 눈앞에 놓여 있다보니 구매욕구가 갑자기 폭발! 함께 갔던 짝꿍과 딸렘의 부추김속에 결국 동물의 숲을 사들고 집으로 오게 된다.
동물의 숲을 계기로 다니던 회사에서 사조직이 결성되었다. 자신의 섬에 없는 과일을 주고 받는 것 부터 해서, 무파니 무 사는 가격, 너굴상점 무 파는 가격을 공유하며 무트코인 이득을 최대화 했고, 너굴상점 희귀 아이템등을 공유하는 것들 외에도 이따금씩 같이 모여서 낚시를 하거나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함께 기도하는 등의 매우 건전한😂 모임이었다.
모임의 이름은 "숲 속 친구들"
평균 연령대 30대 초중반!
구성원 성별 올 남자!!!!
애들이나 여자들이 하는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조직된 모임이 30대 남자들 8명이라니, 참 아이러니 했다.
..물론 평균 연령은 내가 많이 올려놨다.
나랑 놀아주는 20대 친구들에게 감사할 따름이었지.
이 숲 속 친구들 모임은 현재까지도 이어지며 각종 멀티플레이 게임들을 같이 하고 있다. (구박을 받으며)
생각보다 동물의 숲은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굉장히 재미 있었고 게임 하나에 긴 시간을 할애하지 않는 편인데 100시간이 넘게 즐길 수 있었다.
아빠의 유전자를 하나도 안 이어받은 것 같은 외모의 김클레의 딸렘. 그 이름은 김밍지(별칭, 당시5세)
그래도 게임 좋아하는 건 날 닮은 건지 생각보다 곧잘 게임을 따라하고는 했다. 동숲도 마찬가지.
처음에는 밍지의 캐릭터를 만들어 주었더니 졸졸졸 나를 따라다니는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주조작을 곧잘 하며 내 섬 한 켠에 지 집을 짓고는 동네방네 뛰어다니다가 나중에는 인형 옷갈아입히기 놀이를 하듯 고순이 옷가게의 옷들을 매일같이 죄다 사다 갈아 입히며 노는데 심취를 했다.
옷을 수납할 집 창고가 부족해서 최대로 집 증축해주랴, 샀던 옷 또 사고 없는 옷 또 사고 하느라 옷 값 충당하랴.(그 와중에 왕관 100만벨, 여왕관 80만벨....아오 ㅆ)
아빠는 죽어라 돈 벌어다 놓으면 딸렘은 그 돈 갖다 옷 사는데 흥청망청 쓰고 있다. 그야말로 등골브레이커!
돈 버는 것 보다 힘들었던 것은 이 황금 장미!
황금 장미 갖고 싶다해서 황금 장미 틔우기 조건인 섬 꾸미기 평판 ★★★★★ 받아내느라 정말 힘들었다...
뭐 어쨌거나 내 전폭적인 지지속에 밍지는 게임을 굉장히 순수하게 즐겼다. 꽃에 물주고 과일 따서 배고프다고 먹고, 변기에 앉으면 똥싼다고 깔깔 웃고 동물 친구들 집에 놀러가서 같이 놀고, 선물 주고 받고 주민이 자기가 선물한 옷을 입고 다닌다며 기뻐하고..
아빠로써 게임을 즐기는 딸의 모습이 매우 사랑스럽기만 했다.
내 섬에는 달갑지 않은 주민이 있었다.
이름은 "덕근"
보시다시피 못 생겼다.
덕근은 원래 숲 속 친구들 A군의 주민이었다.
맨날 못 생겼다고 투덜거리더니 결국 덕근을 이주 시키는 데에 성공했는데 주민 이주 시스템(섬을 방문한 적이 있는 다른 유저의 섬에 우선적으로 이주를 함)으로 인해 덕군은 숲 속 친구들 B군의 섬으로 이주 했다.
B군 역시 폭탄을 떠맡았다는 식으로 A군을 원망하며 덕근을 모함하고 구박하고는 역시나 덕근을 이주 시키는데에 성공을 했다.
그리고는 세 번째로 정착하게 된 곳이 내 섬이었다.
나 역시도 이주 예정지에 적힌 "덕근" 이름을 보고 절규 했다. 덕근을 다시 다른 섬으로 이주 시키는데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누군지 기억도 안 나지만 캠핑장에 놀러온 주민을 바로 섬으로 영입해서 덕근을 내 보냈던 것.
그리고 그 덕근은 또 다른 내 친구(역시나 남자. 30중반)의 섬으로 이주했다. (친구 : 야이 ㅆ₩&@야)
덕근 폭탄 떠넘기기에 성공한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문제는 밍지였다.
"아빠, 덕근이 어디갔어??"
....?!!
밍지는 그 짧은 시간동안에 덕근이를 새 친구로 받아들이고 정을 주었던 것이었다.
선물도 주고 집에도 놀러 가고 했던 덕근이의 집이 하루 아침에 없어지자 밍지는 급기야 펑펑 울어댔다.
"덕근이 내 친구란 말이야!! 덕근이 데려와!!!!"
아차 싶었다.
밍지는 진심으로 덕근이 뿐만 아니고 섬의 주민들을 모두 친구로 생각했던 것이다.
정말 순수하게 게임을 즐기던 아이, 밍지에게 몹쓸 짓을 했다는 생각이 그제야 들어서 미안한 마음에 어찌해야 할지를 알 수가 없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섬 주인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 하고 내쳐지다시피 섬을 네 번이나 옮겨가야만 했던 덕근이가 순간 정말 데이터 쪼가리가 아니라 사람 같이 느껴져서 뒤늦게 나도 마음이 안 좋았다...
당시 섬 주민들이 톰슨, 은수리, 박하스, 프릴, 신옥, 백프로, 햄스틴, 파슬리, 링링.. 죄다 이런 비인기 주민 뿐이라 죄다 좀 인기 주민으로 바꿔 버릴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밍지로 인해 더 이상 주민들에게 손을 댈 수 없었다.
"밍지야. 캠핑장에 꽃지 왔더라. 백프로랑 바꾸자"
"안 돼!!! 백프로 내 친구야!!"
"밍지야. 아빠 친구가 패치 보내 준대. 패치 인기주민인거 알지?? 톰슨 보내고 패치 데려오자!"
"안 돼!!! 톰슨 내 친구야!!! 절대 안 돼!!"
이런식으로 밍지는 친구들을 절대 보내주려고 하지 않았다.
밍지가 여섯살이 되고 얘를 만나기 전까진 말이다.
얘를 만나곤 적극적으로 지가 먼저 누구 내보내자고 하더라.
인기 주민 아미보 카드를 사주자 밍지는 아주 본격적으로 주민 이주 계획을 착착 진행시켰다.
그리고 이제 섬에 남아 있는 원년멤버는 백프로 만이 남았다.
다른 녀석들은 다 내보냈는데 백프로만은 절대 보내주지 않고 남겨두고 있다. 첫 친구들에 대한 마지막 남은 정일까? 밍지한테 물어보니깐 하는 말이
"백프로 귀여워! 말 버릇도 귀여워!(귤귤)"
....묘한 오만가지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언제인가 다른 유저의 꿈섬에 놀러갔다가 덕근이를 만난 적이 있다. 밍지는 무척 반가워 했지만 덕근이는 전혀 밍지를 기억 못하는 듯 NPC 스러운 대사만 했고..밍지는 살짝 실망한 듯 했지만 크게 슬퍼하거나 마음 아파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내가 무작정 떠나 보냈던 덕근이에게 뒤늦게라도 작별인사를 할 수 있어서 무척 다행이었고 밍지도 기뻐했다.
...마음의 짐을 아주 조금이나마 내려놓았다고 생각해도 되는걸까?
어른으로써 아이들의 꿈과 동심을 지켜주는 것은 의무라고 생각하는데 참 쉽지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동심을 무너 뜨리는 것은 이렇게 전혀 생각치도 못 한 때와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것 같다.
가끔은 내가 어른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나이만 먹고 몸뚱아리만 이렇지 어릴 때 게임 할 때랑 지금이랑 뭐가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든단 말이지.
나는 언제 어떤 계기로 동심을 잃었던 것일까?
만화영화랑 변신로봇, 공룡이 아직도 좋은 나는 동심을 아직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 애들도 오래오래 동심, 순수한 마음을 간직했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 마음을 내가 부숴뜨리지 않기를..주의하고 또 조심해야 할 것 같다.
덕근아.
짧은 시간 우리 딸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마웠어.
그렇게 보내버려서 미안해.
혹시라도 내가 섬을 다시 만들게 된다면
어떻게든 데려와서 널 절대 보내지 않을께.
또 우리 딸이랑 즐겁게 놀아줘.
고마워!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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