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의 일이다.
당시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를 한참 하던 중 길드에 새로운 신입유저분이 오셨다. 화기애애하게 인사를 나누다 형동생 위계질서(?) 확인을 위해 몇 살이냐 여쭈었다.
"좀 많아요. 42살입니다"
그 이후 채팅창에 한동안의 정적이 있었다.
물론 그 정적안에는 다른 길원끼리의 귓속말이 오갔다.
헐..뭐라 말을 해야 하지 할 말이 없네.
42살...게임 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 아닌가?
저 나이 되고도 게임을 할 수 있는거야?
그 형님은 게임을 열심히 접속을 하셨지.
평소 말도 잘 없고 가끔 꺼내는 말은 그 흔한 -_-;;
ㅇㅅㅇ ㅡㅡ+ 같은 이모티콘조차 잘 안쓰는 딱딱한 어투의 질문들.
게임 센스도 별로 없으셔서 동작도 굼뜨고 늘 공략을 자세히 설명드려도 알아들었다고는 하지만 늘 파티창을 보면 항상 혼자 누워계셨다.
하는 말도 항상 같은 두 마디 뿐이었어.
눕고나서 "죄송합니다 후"
부활 받은 후 "감사합니다 후"
시간이 갈수록 알게 모르게 그 형님을 따돌리기 시작했고
그 형님은 슬그머니 게임을 접으셨다.
20년이 지난 현재.
평소에도 같이 어울려 게임을 하던 2-30대 젊은 친구들이 있다. 레포데, 디비전, 포레스트, 백4블러드,레인보우식스,다크타이드 등등등등 많은 코옵게임들을 주로 같이 했었지.
그 그룹과 새로 시작한 게임은 바로 헬다이버즈2 였다.
한때 와우 공대장까지 하며 공대원들을 진두지휘했던 나였기에 나이먹었어도 피지컬은 달릴지언정 게임센스는 뒤쳐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과신이었지. 뭔가 하면 할 수록 나만 자꾸 죽어있었고 그로인해 그 게임판이 자꾸 어려워졌다.
헬다이버즈2는 대놓고 팀킬 유도를 더욱 쉽게하여 게임판을 어지러이 만드려는 제작진의 의도가 다분했단 게임인지라 나만 죽으면 또 다행인데 자꾸 내가 팀원들 뒤통수를 쳐서 팀킬이 잦아지고 만 것이다. 이는 나의 피지컬 부족도 있었겠지만 게임 이해도가 많이 부족해서 비롯된 일이었다.
승부욕 강한 동생 녀석 하나가 슬슬 잔소리를 시작한다.
20년전의 문자 채팅이 아니라 디스코드 음성채팅은 더욱이 감정이 노골적으로 느껴진다.
"ㅎㅎ 미안해. 다음엔 잘해볼게.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저렇게 될줄 몰랐어 ㅎㅎㅎㅎㅎㅎ"
능청스런 변명만 늘어간다.
유탄을 잘 못 쏴서 샘플을 가득 들고 임무 끝나고 비행선에 올라타려는 동생녀석을 죽이고 말았다.
동생은 많이 약이 올랐는지 쉬지않고 잔소리를 해댄다.
"아 진짜. 이건 진짜..행님 진짜 반성하십쇼"
반성하십쇼..반성....반성...반성.....
그 반성이라는 단어에 내 인내심의 끈도 끊어져 버렸다.
제대로 삐쳐버린 난 바로 게임을 끄고 디스코드를 끄고
단톡방을 나와 버렸다.
게이머로써의 자존심 상함
동생들한테 나이만 먹고 민폐를 끼쳤다는 속상함.
그리고 나를 타박했던 동생에 대한 원망과 의상함...
20년전 와우 하던 40살 그 형님이 떠오른다.
아.. 그 나이 먹고도 게임을 하고 있네 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바로 내가 됐다.
나이만 먹었지 그때랑 생각하고 행동하는 건 똑같은데
게임 좋아하는 것도 똑같은데...
젊은 친구들이랑도 곧잘 어울려서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그 친구들도 20년전의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와 같이 게임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억지로 데려다가 끼워주고 놀아주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씁쓸한 마음과 함께 그때의 그 형님이 계속 떠오릅니다.
60대가 돼셨을 형님..아직도 게임 잘 하고 계십니까?
그때는...정말 죄송했습니다. 그 사건 이후로도 쭉 게임을 즐기고 계셨기를 바랍니다.
저도 계속 게임을 할겁니다.
하지만 코옵게임은 이제 많이 못 할것 같아요.
아님 수준 비슷한 40대 친구들이랑 같이 꼴아박으면서 서로서로 폐끼쳐가며(..?) 즐기겠습니다.
행님도 굴하지 않고 게임라이프를 즐기십시오.
건강하십시오 행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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